[히지오키] 시클리드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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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바람이 분다 ost 중 '사랑따윈 필요없어'
-짝!! 짝!!!
허공을 가르며 손바닥이 살에 매섭게 달라붙었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지쳐가는 거야."
히지카타의 뺨을 올려붙인 오키타의 손이 빨갛게 부어가고 있었다. 화끈거리는 볼보다 그게 먼저 보였다. 오키타는 울고 있었다.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해 선뜻 떠올리기 힘들지만, 오키타는 마음이 여렸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탓에 혼자 남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상당했다. 힘겨운 밤이면 가지 말라 같이 있자 보채는 일도 잦았다. 혼자 아파하고 혼자 우는 성격이라 아무도 몰랐겠지만. 그걸 아는 사람이 저 뿐일 거라고 생각하면 알 수 없는 만족감에 마음이 벅찼다. 가지 말라며 붙잡는 오키타의 손을 붙잡을 때면 히지카타는 세상에서 가장 잘난 사람처럼 자만했다. 그 모습도 그 말도 나 말고는 아무도 듣지 못할 테다. 히지카타는 그것이 그렇게 욕심이 났었다. 오키타는 아프게 울었다. 부은 손바닥만큼 울어 얼굴도 빨갛게 부어 있었다. 다가가 저를 끌어안는 히지카타의 어깨를 오키타가 밀어 낸다.
"말없이 가만히 조용히 그냥 그렇게 지쳐가는 거야."
울먹이는 목소리가 떨렸다. 다가가 안으려는 남자를 오키타가 다시 내쳤다. 내팽개쳐진 어깨가 힘없이 늘어졌다. 오키타는 떨면서 말했다.
"그러다 널 망가뜨리고, 날 망가뜨리고. 서로 망가지고 망가뜨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다가가 안았다. 제 오래도록 뒤틀린 감정의 근간이 무엇인지 우는 오키타에게 감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오키타는 다시 남자를 밀쳤다.
"언제까지 이럴 거야. 다 부수고 조각내고, 그러고 나면 또 뭘 망가뜨릴 건데."
부모의 입 안에서 유년기를 나는 물고기가 있다. 치어들은 너무 여리고 작고 약해서, 부모가 제 몸 안에서 키워 지키는 것이다. 그러다 부모가 죽어 사라지고 나면, 치어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붙든다. 피난처도 보호막도 없는 상황, 혼자가 된다는 것은 곧 죽음이다. 홀로 남겨지지 않기 위해, 치어들은 악착같이 매달려 서로를 붙잡는다. 비록 그 행위가 사나운 파도와 무시무시한 천적들에게서 그들을 살리지 못할 것을 알아도, 그것만이 살길이라는 듯이. 그것이 그들을 반드시 살리리라는 듯이. 어쩌면 홀로된다는 공포는 삶에 대한 집착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남의 목숨을 빼앗아 사는 모든 생명은 항상 조금은 이기적인 법이니까…
히지카타는 또다시 다가갔다. 밀쳐진 어깨의 통증에도 신경쓰지 않았다. 다가가 끌어안는다. 오키타는 품 안에서 오열했다.
"그만하자. 이러지 말자. 그만하자 우리..."
욕망에 죄가 있다고 감히 말하지 말라
시클리드
01. 소립자들
잊지 못한 날이 있다.
별 다를 것도 없는 날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여름, 매미가 밤새 울었다. 장마 직전이라 날이 많이 눅눅했고. 정각마다 캐스터는 강수 확률 따위를 운운하며 맞지도 않는 기상정보를 전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평일의 어중간한 시간, 후덥지근하고 찝찝하고, 해가 지기에는 좀 먼 그런 때. 히지카타는 여자를 처음 만났다. 하얗고 가늘고, 쓸데없이 오키타와 꼭 닮은 그 여자가 말했다.
"나는 그 애 누나에요. 우린 하나뿐인 가족이구요."
여자의 표정은 어쩐지 엄했다. 꾸짖는 것도 같고, 화가 난 것도 같고, 굳은 결심을 털어놓는 것 같기도 했다. 직설적이고 당당한 말투, 히지카타는 그것이 거북했다. 여자에게는 사랑받고 자란 사람 특유의 자신감이 있었다. 곧은 등. 그린 듯이 단정한 자세. 그녀 보는 이 누구든 그 강건한 상냥함에 반할 것이다. 그것이 그가 느끼는 거부감의 원천이었다. 말없이 눈앞의 음료를 삼키며 히지카타는 우리라는 말의 폭력성에 대해 생각했다. 듣는 상대방을 배제하는 어휘.
히지카타는 우리라고 부를 수 있을 만 한 누군가를 가진 일이 없었다. 쓰레기처럼 태어나 아무도 없이 세상에 내던져졌다. 더러운 뒷골목 후미진 곳에서 발을 끌어 자랐다. 가졌다가도 잃었고 붙잡아도 결론은 혼자였다. 가진 게 없어 줄 수도 없었고 받아 본 일이 없어 주는 법도 모르니 다가오는 사람도 없더라. 제 3자로 살아 온 인생. 히지카타는 비웃듯 물었다.
"이봐요 아가씨. 아가씬 녀석이랑 얼마나 살았어요?"
죄를 범했다. 거짓으로 둑을 쌓아 세상을 거스르려 했다. 녀석의 눈과 귀를 막아 모든 것을 숨겼다. 돌아갈 곳을 지워 녀석을 훔쳐 품었다. 내가 들어갈 수 없는 세계로부터. 오키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나는 왜 네가 밉고 나는 왜 너를 질투하며 나는 왜 네게만 집착하는 걸까. 변하지도 돌이키지도 못하면서 왜 나는 이 거짓을 이어가고 있는 걸까. 거짓된 시간을 걸어 우리의 사이에는 대체 무엇이 남아 있는 걸까. 남아 있기는 하나. 오키타.
너를 내 곁에 붙들어 매고 나는 무엇을 하고픈 걸까.
***
날밤 뒤바뀌는 게 일상인 일이다. 그대로 잠들어 버려도 뭐라 할 사람 하나 없어도, 일이 끝나면 오키타는 굳이 새벽길을 걸어 그에게로 회귀하곤 했다. 차 끊긴 거리를 걸어 낡아빠진 달동네 비스듬한 계단을 올라 그의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는 것이다. 잠들지 않은 그는 어둑한 단칸방 안에서 무언가에 열중하며 담배를 물고 있을 테고. 오키타는 그런 그의 등 뒤에 누워 그의 뒤통수를 쳐다보다 잠이 든다. 흔한 인사도 없이, 달콤한 말 한 조각도 없이, 얇은 이불 한 장조차 없이. 예전 부유한 고객의 부드러운 침대 위에서도 잠들지 못했던 극심한 불면증이 다 거짓말인 것처럼, 그의 곁에서 오키타는 잠이 든다. 평온해진다.
"더 있다 가. 늦었잖아."
고객들은 오키타가 아침까지 남아 있는 것을 선호했다. 바로 돌아가 버리는 건 '그 짓' 만을 위한 관계 같아 기분이 더럽단다. 아침까지 자신과 연애질을 해 줄 연인을 사는 거라고 지껄이는 얼간이도 있다. 오키타의 고객들은 외로움을 탔다. 세상의 양지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서 제게 상냥함의 대용품을 요구한다. 번지수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셈이다. 오키타는 한 번도 그들의 옆에 오래 남아 준 일이 없으니까. 취미 독특한 단골의 말에 따르면 서비스가 지랄맞단다. 덕분에 단골도 몇 없고, 손님도 적었다. 그래도 제 습관을 고치지는 않았지만.
"형씨. 돈도 있으면서 아줌마 안 쓰는 이유가 대체 뭐야?"
그냥, 파스스 웃으며 남자가 더 있다 가, 나 아침 해 주고 가 칭얼댔다. 오키타는 대답 않고 들고 있던 고무장갑을 얼굴에다 던졌다. 남자는 화난 기색도 없이 세제 묻은 고무장갑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밥 줘~ 오빠가 해주는 밥이 먹고 싶어요~ 하면서 익살을 떨었다. 그 모습에 져서, 오키타는 쏟아내려던 잔소리를 그만둬버렸다.
"대체 뭐가 그리 바쁠까. 꿀단지라도 숨겨뒀어?"
긴토키는 오키타의 몇 안 되는 단골 중 하나였다. 생긴 것 멀쩡하고 훤칠한 허우대에 넉넉한 지갑, 당장 나가서 하나 꼬셔도 넘어오는 사람 수두룩할 텐데 왜 저를 찾는지 처음엔 궁금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답은 하나다. 이 남자는 저를 가정부 대신으로 쓰고 있는 거다. 두 개의 침실과 두 개의 화장실, 그리고 서재와 드레스 룸까지 딸린 널찍한 아파트는 혼자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항상 어질러져 있었다. 처음 긴토키의 집에 왔을 땐 아주 기함을 했다. 히지카타의 결벽증에 익숙했던 오키타는 긴토키의 집에서 그때껏 모르던 세계를 보았다. 이건 돈이고 뭐고 도망쳐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하품 쩍쩍 하며 배를 긁는 긴토키의 얼굴과 상당히 갭 있는 모습에 웃음이 터져 타이밍을 놓쳤고. 결국 그 밤은 내내 긴토키와 집 청소를 했다. 처음 만난 사인데 뭐가 그리 편했던지, 내내 수다를 떨면서 청소하다가 난생 처음 외박을 했다. 집 청소의 답례로 집까지 바래다주는 매너정도는 있었고. 골 때리는 사람이다. 이런 고객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오키타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꿀단지는 아니고, 걍 동거인."
"애인?"
오키타는 잠시 말을 고른다.
"나 갈게."
말은 해 주고 가야 할 거 아냐 하고 궁시렁 대는 긴토키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아파트를 나섰다. 새벽 냄새가 찌르르하게 온 몸에 달라붙는다.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르다가, 걷기 시작한다. 한 쪽이 터진 아파트는 긴 복도를 지나야 엘레베이터가 있었다. 이 시간대의 엘레베이터는 항상 술 냄새와 뒤섞인 고기 냄새로 퀘퀘했다. 출입구를 제외한 세 면에 온통 커다란 거울이 달린 엘레베이터는 어떻게 해도 자신이 비춰지는 것을 피할 도리가 없다. 아침의 바쁜 직장인들을 위한 배려였겠지만, 이 시간대에밖엔 엘레베이터를 탈 일 없는 오키타에게는 유용하다기보다 괴기스럽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게 당연했다. 멍하니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을 들여다보며 오키타는 생각한다. 애인도 가족도 그렇다고 친구도 아닌 자신들의 관계에 대해.
세상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세상에서 추방당한 두 소년이 있었다. 혼자였고, 고독했고, 갈 곳이 없다는 점에서 그들은 꼭 같았다. 둘은 서로에게만 의지하며 살았다. 서로는 서로에게 친구였고, 동지였고, 가족이었다. 너는 내 전부라는 허망한 언어가 그들에게 있어서는 진실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인연 외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으니까. 필사적으로 붙들어 영원할 것 같던 두 소년의 인연은 한 소년이 떠남으로써 뚝 끊긴 듯이 보였다. 남은 소년은 홀로 진흙탕 속을 살았고. 몇 년 뒤, 떠났던 소년이 돌아왔다. 어마어마한 빚더미와 함께.
스무 해. 우리의 관계는 친구에서 주인과 상품으로 변화했지만, 오키타는 이렇게 정의한다. 서로 발목 잡는 관계라고.